작성일 : 26-01-3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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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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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웅녀샘
 조회 :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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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박훈 / 2020 / 21세기북스 / 서가명강 14
도쿠가와 막부 (1603-1868)
흑선출현-메이지유신 (1853-1868)
요시다 쇼인 (1830-1859)
사카모토 료마 (1835-1867)
사이고 다카모리 (1828-1877)
기도 다카요시 (1833-1877)
야마가타 아리토모 (1838-1922) 육군의 아버지
가쓰 가이슈 (1823-1899) 해군의 아버지
"다음으로 도쿠가와 시대 일본에서는 상업과 화폐경제가 놀랄 정도로 발달했다." (23쪽)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지 못한 계층은 정작 지배층인 사무라이였다." (26쪽)
"특히 1850년대에 개항이 되자 물가는 급격히 올랐고 이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26쪽)
"유학에 접한 사무라이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전투 대신, 천하대사의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29쪽)
"자급경제의 발전으로 네덜란드와의 무역은 이때 이미 큰 의미를 갖지 못했지만 그들이 가져다주는
정보는 최상급이었다. 미국이 페리제독을 일본에 파견할 거라는 것도 네덜란드를 통해 1년 전에는
이미 알고 있었다." (37쪽)
"이처럼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농민, 상인이라고 하는 주요 피지배세력은 사무라이층에 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메이지유신은 지배층인 사무라이층 내부의 다툼과 그 파장으로 일어난 것이고,
그 속에서 급진개혁파가 주도권을 잡아 이뤄낸 변혁이었다." (45쪽)
"1890년 제국의회가 설립된 후 첫 수상이 되었다. 그는 개원연설에서 유명한 '주권선, 이익선' 발언을 했다.
(98쪽)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료마가 곧 잘 소환된다."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아시아에 대해 날 선 자세를 보이는 정치세력은 요시다 쇼인을 즐겨 소환한다."
(166쪽)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서구화를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민족적 상실감을
사이고를 통해서 만회하려고 했던 것이다." (178쪽)
"이처럼 일본인들은 선민의식, 일본주의, 천황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연호는 모두 중국 고전에서 가져온다."
(249쪽)
"본격적인 계급투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외세와도 전쟁도 광범한 내전도 회피했다. 민중 대다수는 변혁
과정을 관망하는 데 그쳤고, 막부는 서양 열강과 전쟁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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