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arius

 
작성일 : 12-04-20 20:42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글쓴이 : 웅녀샘
조회 : 1,477  
조한욱 / 2000

19세기에 랑케에 의해 학문의 지위를 얻게 된 역사학은 국가의 정치와
외교의 역사가 가장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었다.

사회사는 영웅중심적이고, 지배자 중심적인 정치사의 성격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사회사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일단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1930년대에 마르크
블로크와 뤼시엥 페브르가 출범시킨 아날학파에 의해 주도되었다.

Pietro Redondi - 이단자 갈릴레오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 마르탱 게르의 귀향

"레돈디에 따르면, 이것은 갈릴레오에 동조하던 교황 우르반 8세가 '새로운
철학'의 주동인물을 처단하려 하던 교회 내부의 우파세력들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내건 이유에 불과하며, 실지로 예수이트 교단으로 대표되던 당시의
우파 세력들은 갈릴레오를 지동설이 아닌 '원자론'을 이유로 심판하려 했다는
것이다. 원자론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확립된 화체설에
대한 부정이다. 만일 갈릴레오가 이러한 이유로 재판을 받을 경우, 그는 지동설을
옹호했다는 '과오'가 아니라 교회의 정설을 거부했다는 '이단'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 된다. (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