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1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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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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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웅녀샘
 조회 : 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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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ie Suk (석지영) / 송연수 옮김 / 2013 / 북하우스
"우리 부모님은 이북 출신이다."
"친가는 지주였다."
"동생들이 태어나고 2남 3녀의 장녀였던 어머니는 고용인과
수입품이 그득한 저택에서 풍요롭고 편안한 생활을 누렸다."
"우리 부모님은 국민학교 6학년 때 중학교 입시를 위한 과외모임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1973년, 아버지가 내과 수석 레지던트로 일하던 병원에서 나는 태어났다.
어머니는 한국 베링거 인겔하임 제약회사의 독일인 사장의 특별비서관이었다."
"어머니와 시어머니 사이의 기싸움은 예견된 바였다. 친할머니는
며느리가 아들 없이 딸만 둘 낳았다는 사실에 상당히 괴로워했다."
"냉혹한 한국의 현실을 살펴본 어머니는 가족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장남인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와 세 명의 동생을 한국에 남겨두고
낯선 나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 어머니는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립유치원에
나를 입학시키는 데 성공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수녀들은 체벌을 선호하여 매일같이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했다. 나는 두꺼운 나무 자로 거의 매일 매를 맞았다."
"방과 후에는 어머니가 일을 마칠 동안 학원에 가서 산수를 공부해야
했다."
"증가하는 인구 탓에 수십 년동안 의료 인력난을 겪던 미 의회는 고숙련
전문직을 우대하는 이민법을 통과시켰고, 그 이민법의 혜택으로 1970년대
초반 미국에 건너온 한국 이민자들의 약 3분의 1이 의사였다."
"훗날 고모들이 전하기를, 내가 미국으로 떠난 후 친할머니는 나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쳐 거의 실성할 만큼 절망에 빠졌다고 했다."
"근처 공립학교는 적절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어머니의 판단 끝에
가계 재정상 꽤 부담이 되는 학비를 감수하고 사립학교를 선택한 것이다."
"헌터 입학시험을 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인 학원을 플러싱 지역에서 찾아냈다."
"하지만 고등학교 체제는 그저 나에겐 맞지 않았다. 숙제도 하지 않았고 과제물도
읽어 가지 않았다. 리포트도 제때 내지 않았다. 시험 준비는 끔찍할 정도로 안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다. 나는 시와 소설, 미술, 극장 공연과 음악 등 내 마음을 빼앗고
공부를 방해하던 것들과 수업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을 연결해 보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예술적 재능과 음악 활동을 활용하면 예일대가 좋아할 만한 지원서를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는 헌터의 다른 학생들만큼 학업성취도가
높지 않았다. 예일대 동기가 될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았고, 시험을 잘
보거나 과제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크게 뒤흔들고 그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는 책을 굳이 한 권만 고르라면,
나는 <오이디푸스왕>이라고 말하겠다."
"매우 생산적인 학자였던 말콤은 매일 글을 썼다. 한 페이지 그리고 반. 하루에 단 1.5쪽.
절대 거르치 않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 부모님이 말하길, 우리가 한국에 남았다면 내가 한국의 학제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내가 가진 좋은 재능과 장점들, 내 사고방식, 그리고 내가
중요하다고 간주하는 것들은 한국의 학문성취의 세계에서는 그리 높게 평가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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