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ar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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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 > 박훈 / 2020 / 21세기북스 / 서가명강 14 > > 도쿠가와 막부 (1603-1868) > 흑선출현-메이지유신 (1853-1868) > > 요시다 쇼인 (1830-1859) > 사카모토 료마 (1835-1867) > 사이고 다카모리 (1828-1877) > > 기도 다카요시 (1833-1877) > 야마가타 아리토모 (1838-1922) 육군의 아버지 > 가쓰 가이슈 (1823-1899) 해군의 아버지 > > "다음으로 도쿠가와 시대 일본에서는 상업과 화폐경제가 놀랄 정도로 발달했다." (23쪽) > >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지 못한 계층은 정작 지배층인 사무라이였다." (26쪽) > > "특히 1850년대에 개항이 되자 물가는 급격히 올랐고 이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26쪽) > > "유학에 접한 사무라이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전투 대신, 천하대사의 정치에 뛰어들기 > 시작했다." (29쪽) > > "자급경제의 발전으로 네덜란드와의 무역은 이때 이미 큰 의미를 갖지 못했지만 그들이 가져다주는 > 정보는 최상급이었다. 미국이 페리제독을 일본에 파견할 거라는 것도 네덜란드를 통해 1년 전에는 > 이미 알고 있었다." (37쪽) > > "이처럼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농민, 상인이라고 하는 주요 피지배세력은 사무라이층에 비해 적극적인 > 역할을 하지 못했다. 메이지유신은 지배층인 사무라이층 내부의 다툼과 그 파장으로 일어난 것이고, > 그 속에서 급진개혁파가 주도권을 잡아 이뤄낸 변혁이었다." (45쪽) > > "1890년 제국의회가 설립된 후 첫 수상이 되었다. 그는 개원연설에서 유명한 '주권선, 이익선' 발언을 했다. > (98쪽) > >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료마가 곧 잘 소환된다." >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아시아에 대해 날 선 자세를 보이는 정치세력은 요시다 쇼인을 즐겨 소환한다." > (166쪽) > >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서구화를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민족적 상실감을 > 사이고를 통해서 만회하려고 했던 것이다." (178쪽) > > "이처럼 일본인들은 선민의식, 일본주의, 천황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연호는 모두 중국 고전에서 가져온다." > (249쪽) > > "본격적인 계급투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외세와도 전쟁도 광범한 내전도 회피했다. 민중 대다수는 변혁 > 과정을 관망하는 데 그쳤고, 막부는 서양 열강과 전쟁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28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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